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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애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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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인아
구분
제목 독립전쟁 100주년, 나는 독립군입니다.

올해는 1919년 3.1운동을 시작으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독립 전쟁으로 이어진 특히 일본군과 맞서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봉오동·청산리 전투가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척박한 만주 땅에서 추위와 굶주림에도 독립을 향해 최전선에 싸웠던 독립군들의 당시 순간들을 느낄 수 있는 특별 전시회가 독립기념관에서 열려 광복절을 맞아 다녀왔습니다.


▶전시일시 2020.06.04-10.25

전시장소 제7관 특별기획전시실Ⅱ  



이번 독립전쟁 100주년 특별기획전 '나는 독립군입니다'는 독립군 당사자들의 회고와 기록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마치 독립 전쟁 현장에 함께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역사를 배우며 간략하게 처음 일본군과 맞서 승리를 거둔 전투라는 말만 들었던 저에게 조금 충격적인 전시회였습니다. 특별기획전은 총 5개의 주제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었는데요, 독립군이란, 나라를 빼앗은 일제에 맞서 군대를 조직하여 직접 총과 칼을 들고 전투에 나선 이들을 말합니다.  


제7관 특별기획전시실Ⅱ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의 산과 계곡에 숨어 끊임없이 일본군경과 교전을 하며 기록이라는 것은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 자료가 많지는 않지만 광복 후 살아남은 독립군들이 그 전투의 기억을 더듬어 남긴 기록을 통해 다시 한번 현장을 생각해보는 전시입니다.


대한민국 국군 최초의 장군 김홍일은 독립운동가였고, 한국광복군이었습니다. 1898년 평안도에서 출생한 김홍일은 평안도에 개화 지식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고 신민회가 지원을 해서 만든 오산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청년 지식인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을 보아온 김홍일은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해 군간 학교를 다녔습니다. 무기 제조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던 김홍일은 김구와 상해에서 만나 1932년 1월 이봉창 의거와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에 사용되었던 폭탄을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에게 폭탄을 제조·공급한 김홍일 장군의 은잔 


황학수(1877-1953)는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독립군을 거쳐 광복군으로 활동한 군인입니다. 3.1운동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냈으며, 의용군을 모집해 광복군을 조직하고 사령관 대리로 신병들의 정신교육과 군사훈련을 담당했습니다. 


이강훈(1903-2003년)은 강원도 김화에서 태어나 1919년 16세에 3.1운동에 참가한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실에서 비서로 근무합니다. 1925년 신민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체포되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54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출소하게 됩니다. 이후 한국 독립운동사 자료수집과 서적 편찬에 심혈을 기울이십니다. 


▲황학수 벼루 & 이강훈 만년필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군인으로 훈련을 받고 무기를 들고 싸우던 독립군은 한말의 의병 또는 대한 제국의 군인을 비롯해 평범한 학생들까지 합류해 목숨을 걸고 독립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독립전쟁에 뛰어든 학생


▲경계근무 중인 한국광복군 제2지대 여성대원


일제의 압박으로 인해 국외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고 훈련시키는 단체들이 여럿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해 살던 한인들을 중심으로 독립군 기지가 건설되었습니다. 그중 1911년 만주 유하현에 조직되어 1920년까지 항일 독립군 양성 기관이었던 신흥무관학교는 여러 전투에서 활약한 독립군을 길러냈습니다.





독립군은 일본군과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요, 무장을 하고 훈련을 받은 일본군과 맞서기 위해서 주로 산이나 골짜기 등에 숨어 공격을 하게 됩니다. 변변한 무기도 없고, 식량도 공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와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봉오동 전투




▲봉오동 전투 민족기록화


▲청산리 전투


▲청산리전투 참가자 이우식 수기


총과 칼을 들고 전쟁에 나가 싸운 독립군과 함께 묵묵히 광복의 날을 기다리며 독립군 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만주나 연해주로 이주해 살던 가족들 역시 독립군에게 식량과 군복, 잠자리를 제공하는 등 독립 전쟁을 이끄는 또 다른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광복군 지복영 수기


100년 전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과 기록들을 보며 추위와 굶주림 등 고통을 참으며 버틴 독립군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이번 전시는 10월까지 이어집니다. 일제 징용에서 탈출해 광복군이 됐던 분들의 생생한 증언도 들을 수 있습니다. 독립 전쟁에 담긴 독립 정신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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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4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