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감성여행

흥의 뿌리를 찾아서

천안 흥타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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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흥타령관

  • 위치 / 천안시 동남구 천안대로 412
  • 전화 / 041-521-2893
  • 시간 / 09시-18시 (매주 월요일 휴관)

지난 금요일, 한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오랜만에 여럿이 모였다.
그리고 10시간 정도를 서로 떠들고, 웃고, 격려하고 축하했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어떻게 우리는 지칠 줄 모르고 놀 수 있었을까. 놀면 놀수록 솟아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건 아무래도 우리가 적절한 술이 더해진 흥의 민족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흥의 뿌리를 찾아 우리는 전통 술과 전통 춤의 전문박물관인 천안 흥타령관을 찾기로 했다.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인 '흥'을 얼마나 흥겹게 보여주고 있을까?

천안 흥타령관에는 건물 밖 담장에서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조상들의 그림이 모자이크로 붙어있다.

그 담장 위로 보이는 네모 반듯한 커다란 건물에는
우리나라의 흥을 대표하는 듯 신나게 탈춤을 추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마치 우리보고 어서 들어와서 놀다 가라고 하는 것 같다.

1층에는 춤주제관이 있다.

춤을 주제로 전시장을 꾸민 것인데, 우리나라의 흥타령 문화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춤과 흥에 관련된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화려한 궁중 무용 의상이나 민속 의상을 입고,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덩실덩실 신나게 한바탕 놀았을 우리 조상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각자 다녀왔던 나라의 축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다 보니 기념 인형 하나만 봐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축제에 빠지지 않는 것은 역시 노래와 춤, 그리고 술이다.

2층으로 이동하면 본격적으로 술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다들 애주가는 아니지만, 술을 접한 지 10여 년이 지나다 보니 다들 나름 진지하고 전문적으로 전시 관람에 임한다.

이렇게 생활에 밀접한 전시를 관람한 것은 처음이라며 대뜸 흥분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다들 어린아이 같고 귀엽다.

시작은 전통주관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누룩으로 술을 만들어 먹었던 우리나라 술의 역사를 고문서, 누룩틀, 소줏고리 등
전통주 관련 유물 및 자료 전시를 통해 그 역사와 제조과정 등을 알려준다.

잘 알지 못했던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귀여운 모형으로 재미있게 보여주었고,
다양한 옛 자료들이 우리나라 흥 역사의 깊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현재 세계 최대 술 판매량에 이바지하는 소주를 유행하게 한 조선시대의 소줏고리는 우리를 멈춰 서서 손뼉 치게 한다.

명주관에 들어서자 이번엔 귀하고 화려한 술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서로 먹어본 게 있느냐고 묻지만, 다들 이름만 들어본 전설의 술이라며 놀라워한다.

천안의 연미주, 한산소곡주, 포도주, 꼬냑 등 빼곡히 전시된 전국의 전통 명주를 구경하며 슬그머니 입맛을 다신다.

속속 들려오는 시음 타령을 뒤로 하고, 다음 전시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마지막으로 술의 아름다움을 장식하고 그 맛의 깊이까지도 좌우하는 주기를 전시한 주기 명품관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같은 술을 마시더라도 그 잔에 따라 당시의 맛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명절이면 아빠의 술을 받았던 묵직한 도자기 잔과 병,
친구들과 선술집에서 챙챙- 부딪히며 수선스럽게 마시던 유리잔 등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진열되어 있다.

파수부잔, 계룡산 분청사기, 참외모양매병 등 생소하지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술병들은
술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술의 삶을 또 다른 모습으로 보여준다.

술에게 있어 주기는 우리의 의복 혹은 집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주기들로 인해 어느 전시관에서보다 훨씬 마음을 빼앗긴 순간이다.

물론 과유불급, 간혹 술은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약하게 하고,
당장의 기분에 충실하게 하여 심할 경우 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술을 마시다가 술에 먹히는 일이 생긴다고.

약한 정신으로 쾌락만을 좇다가는 그게 무엇이든 중독이 되고 다음은 패망의 길이 기다린다.

그러나 술은 팍팍하고 지겨운 삶의 순간에 우리를 더욱 흥겹게 해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니 간혹 필요하지 않겠는가.

흥타령관의 견학을 통해 어른인 듯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를 흥 가득한 민족의 후손으로서

그것을 고맙고 조심스럽게 다룰 수 있는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자고 다짐하게 한다.

적당한 음주는 건전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