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이전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이전
메뉴 닫기
천안애 살어리랏다

여행리포트

  • facebook
  • kakao
  • print
  • TOP

추천여행기

시민리포터 상세보기
작성자 강경원
구분 추천여행기
제목 백제의 시조 온조왕사당과 조선시대 관청 직산현관아 천안 여행


백제의 시조 온조왕사당과 조선시대 관청 직산현관아 천안 여행

 

천안시 직산읍 성산 자락에 자리잡은 온조왕사당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인 고구려 백제 신라 중 우리나라 남서부에 자리잡았던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을 모시는 사당으로, 천안시 주관으로 2015520일 준공하여 온조왕을 기리는 제사인 온조대왕 숭모제를 해마다 펼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온조왕은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이라고 불리던 주몽과 고구려 건국에 큰힘을 실어준 소서노 부인사이에 비류에 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인 유리가 찾아와 주몽을 상봉하면서 아들로 인정을 받아 고구려 태자에 오르자 어머니인 소서노 비류와 함께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다.


 

비류와 온조는 함께 남하하였으나 중간에 의견이 갈려서 비류는 지금의 인천 지역인 미추홀에 정착하여 백제를 세웠고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뒤 국호를 십제라고 하였으나 비류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 정착에 실패하고 죽자, 비류를 따르던 사람들이 온조에게 합류하여 국호를 백제로 통일하였다.


 

온조왕이 세운 하남위례성은 남한산성일대라는 기록도 전해오지만 삼국유사 왕력조의 기록에 의하면 천안시 직산읍에 온조의 위례성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직산에 위례산성이 자리잡고 있고 온조를 따라 남하했던 귀족들인 직산조씨(조성) 천안전씨(전섭) 목천마씨(마려) 등의 본가가 전해와서 천안 위례성의 근거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원래 온조왕사당은 조선시대에 건립되어 봄 과 가을에 온조왕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오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온조왕 사당이 직산현 관아 동북쪽으로 2km 정도 거리에 조선건국 초기인 세종 11년인 1429년에 세워서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조선전기 문신 이행·윤은보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하여 1530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온조왕 사당이 세조 11년인 1465년에 직산현 관아 동북쪽으로 1.5km 정도에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와서 27년의 시차가 존재해서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옮기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는지 현재로서는 알기가 힘들다.


 

세종 또는 세조 시대에 지어진 온조왕사당은 정유재란이 발발한 1597년에 불에 타서 소실되고 선조 36년인 1609년 온조왕 사당의 건립제의가 있었으나 짓지 못하고 조선 인조 171639년 남한산성에 온조왕을 모시는 숭렬전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오면서 천안 직산에는 온조왕 사당이 건립되지 못했었다


 

위와 같은 기록으로 조선 초기에는 천안지역에 온조왕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조선 중기 이후에는 백제 남한산성 설에 따라서 남한산성에 온조왕사당을 건립하였다.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가 없으나천안시에서는 직산 위례성의 근거에 따라 문헌상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는 위례산성 인근에 백제왕 온조왕을 재인식시키고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사당을 신축하였다.


 

백제왕 온조

온조왕사당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서리 166


 

온조왕사당에서 동쪽으로 100m 거리에는 조선시대 직산현의 지방행정관청 역활을 수행했던 직산현관아가 자리잡고 있는데 직산읍은 삼한시대 목지국의 중심지로서 서울기점 90km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여지도서기록에 객사 19·군기 6·동헌 14·내아 30칸 등 많은 건물의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직산현관아는 현재 4동의 조선후기 건물인 내동헌·외동헌·내삼문·외삼문 건물이 남아 전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데 19761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2호 직산현관아<내동헌.외동헌.내삼문.외삼문>로 문화재청과 충청남도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남쪽에서 약간 동쪽을 향해 기울어진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는 직산현 관아의 출입문 역할을 했던 외삼문은 관청의 정문으로 앞면 3·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아래층 3칸에는 3문을 달아 동헌으로 통하도록 하였고 위층에는 마무를 설치하였고 2층 문루에 올라서면 직산현 지역이 내려다 보인다.


 

충남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직산현관아 외삼문 건물 상단에 호서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를 담은 '호서계수아문(湖西界首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는 호서의 첫관문 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천안의 옛지명이었던 '직산'이라는 명칭과 함께 직산현의 위치를 알게 해준다.


 

직산현관아 외삼문 앞에는 직산현감을 지낸 석탄 이신의가 광해군의 폭정에 대해 상소하였다는 이유로 함경북도 회령에 유배되어서 지은 연시조인 소나무, 국화, 매화, 대나무의 사우 시조가 세워져 있다.


소나무

바위에 서 있는 소나무가 위엄 있고 당당하여 반가운데

바람과 서리를 겪어도 여위는 흔적이 전혀 없다

어쩌다 봄빛(푸른 빛)을 가져 고칠 줄 모르나니


 

직산현 관아 외삼문을 지나면 동헌의 앞에 자리한 내삼문이 나오는데 앞면 9·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칸에 출입문인 솟을대문이 있고 양 옆에 각각 3·5칸의 창고로 쓰이던 고방이 달려 있어서 동헌으로 가는 길목에서 외부의 출입을 단속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내삼문의 안쪽에는 현감들이 업무를 보던 건물인 동헌이 자리잡고 있는데 앞면 7·옆면 3칸의 건물로, 가운데 4칸은 대청을 크게 만들어서 집무를 보았고 좌우로는 온돌방이 자리잡고 있어서 관장이 사무를 보았고 동헌 뒤편에는 현감의 관사인 내아가 자리잡고 있으며 광복전후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90~1991년에 보수하여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정무를 보던 중심 건물로 지방의 일반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여기서 행해졌는데 지방관의 생활 처소인 내아(서헌이라고도 함.)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헌으로 불리게 되었고 아사 군아 현아 시사청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직산현관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2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동리 327-16

 

 

 

 

 

목록

만족도조사
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담당부서 :  
연락처 :  
최종수정일 :
2024-03-28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