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이전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픈! : 천안시 문화관광 홈페이지가 오픈했습니다.
이전
메뉴 닫기
천안애 살어리랏다

여행리포트

  • facebook
  • kakao
  • print
  • TOP

추천여행기

시민리포터 상세보기
작성자 강경원
구분 추천여행기
제목 3.1만세운동의 주역 유관순 열사 생가 사적지 기념관 천안 여행

3.1만세운동의 주역 유관순 열사 생가 사적지 기념관 천안 여행

 

탑골공원에서 펼쳐진 19193.1만세 운동에 참가한 후 고향인 천안시 병천면으로 내려와

천안시 아우내장터에서 4.1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서대문 옥사에서 순국하신 유관순열사유적지, 유관순열사추모각에서

1.3km 떨어진 매봉산자락에서 태어나서 자란 유관순열사 생가를 찾았다.




유관순열사 생가는 19721014일 국가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는 시설로

유관순열사 기념관에서 매봉산을 넘거나 주차장 앞으로 난길을 따라 1.3km 가량 차로 이동하면

매봉산 자락에 바짝 붙어 지어진 초가삼간으로 유관순열사 생가 바로 옆에는 유관순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유관순열사가 다녔다는 기독교 감리교회 매봉교회 옆에 '자 집 형태의 초가삼간의 생가는

낮은 담장 너머로 들여다 보이는데 대나무로 발을 친 사립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초가가 자리잡고 있고

초가삼간 실내에는 아우내장터에 나가기전의 상황을 재현해 놓은 인형들이 유관순열사의 흔적을 느끼게 해준다.


 

유관순열사 생가 초가집 정면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건넌방은 경성복심법원 재판 기록문을 토대로

유관순열사가 사촌언니와 함께 남동생 두명과 둘러 앉아 아우내만세운동에 사용할 태극기를 집에서 제작하는 광경과

3.1운동 당시의 태극기와 현재의 태극기에 대한 비교를 전시해 놓아서 태극기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초가집 정면에서 오른쪽에 자리잡은 안방에는 아우내독립만세 운동을 펼치기 위하여

유관순 열사의 모친 이소제, 숙부 유중무, 교사 김구응, 마을유지 조인원, 부친 유중권이 안방에 둘러 앉아서

아우내 장터에서 펼칠 만세운동에 대하여 운영을 논의하고 있는 광경을 연출해 놓았다.


 

유관순열사 생가 바로 옆에 우뚝 솟아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매봉교회는

1919년 유관순 열사의 4.1만세운동 이후 문을 닫았다가 1962년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이화여고가 지령리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다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196711월 이화창립 80주년 기념으로 재건립되었다.


 

유관순 열사 사우 맞은편에 자리잡은 관리사는 3.1만세운동 이후 가족을 잃고 거처할 곳이 없이 생활하던 유관순열사의 남동생인

유인석씨의 가족을 19977년 한옥건물을 건축하여 관리사에서 거주하면서 유관순 열사 사우를 관리 하도록 지어진 건축물로 현재는 비어 있는 건물이다.


 

유관순열사 사우 오른편 숲 안에는 유관순열사 생가 비문이 건립되어 유관순 열사의 생애가 짧고

열사와 관련된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이어서 이를 보완하고 그동안 유관순 열사에 대한 잘못 전해지던 사실이나 이야기들을 바로 잡으면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게 해주고 있다.


 

유관순 열사는 어려서부터 효성과 신념이 강하였고 형제와 친구에게도 우애가 남달리 두터웠으며 이화학당에 유학을 가서도 성실한 모범생으로 이름이 높았고

3.1만세 운동에 참여한 후 고향에 내려와 교회학교 유림의 대표들을 만나 3.1운동에 대해 설명하고 참여를 호소하여 아우내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유관순열사생가 생가 주변 500m 이내의 지역에서는 문화재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토지와 임야의 형질을 변경하는 행위는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득하여야 가능하게 하여서 주변을 보호하고 있고 유관순 생가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봉화탑 0.8km 초혼묘 1.0km 에 이어 유관순 열사 추모각 1.2km 구간으로 이어진다.


 

천안 유관순 열사생가

매봉교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유관순생가길 18-2


 

유관순열사 생가에서 매봉산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로 1.4km를 달려가면 병천면 아우내 장터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조성된 우관순열사 유적지가 나오는데

유적지에는 유관순열사 동상, 관리사무소, 유관순열사기념과 유관순열사추모각 과 사당 순국자추모각 유관순열사동상 휴게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유관순열사 유적지 제일 안쪽에 자리잡은 유관순열사추모각은

태극기가 휘날리는 세 단계의 계단을 오르고 삼문을 지나 추모각이 나오는데 삼문을 지나서 다시 한 단계의 계단을 올라 이어지는 추모각은

참배객이 피워놓은 향이 피어오르고 추모각 안에는 유관순열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유관순열사 추모각 안쪽 정면에 봉안된 유관순열사의 영정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표준영정 제78호로 지정한 윤여환(56) 교수가 그린 영정으로

가로 120cm, 세로 200cm의 전신 좌상으로 쪽진 머리에 흰색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3.1운동 직전 태극기를 손에 쥐고 이화학당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유관순열사 추모각에서 오른쪽을 난 문을 통해 200m 정도를 걸어가면 191941일 충남 천안 병천면에서 호서지방 최대의 만세운동으로 평가되는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3,000여명의 군중 앞에서 나선 애국선열과 애국지사 60분의 넋을 기리고자 위패를 모신 순국자추모각이 나온다.


 

아우내장터 순국자추모각안에는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유관순열사의 부모를 포함한 19분이 현장에서 순국하셨으며

남은 분들은 옥고를 치르거나 부상을 입어서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셨던 분들로 20098월에 추모각을 완공하고 선열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유관순열사 추모각 올라가는 계단 왼편에 자리잡은 유관순열사기념관은 형태로 지어졌는데

위대한 유관순, 불꽃 어둠을 밝히다, 작은불씨 희망을 키우다, 유관순 겨레의 불꽃이 되다, 희망의 별 마음에 새기다 등의 순서로 전시가 되어 있어서

유관순 열사의 생애와 조국에 바친 열사의 흔적을 만나 볼 수가 있다.


 

유관순열사 기념관 입구를 들어서면 위대한 불꽃 유관순 이라는 주제로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습니다

이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이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라는 유관순열사의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출사표가 적혀 있다.


 

유관순의 어린시절 코너에는 매봉산 기슭 지령리에서 태어난 유관순은 활발하고 명랑한 성격 따듯한 마음씨와 다정한 성품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했으며

씩씩하고 당찬 아이로 마을 아이들과 놀적에는 우두머리가 되어 대장 노릇을 하였고 어른의 말이라도 도리에 어긋나면 자기 뜻을 당당히 밝히던 아이였다.


 

유관순의 학창시절은 이화에서 꿈과 희망을 키우다라는 주제로 샤프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교비생 자격으로 편입하여 정동교회를 다니며

학교생활에서 매사에 적극적이고 총명했던 유관순은 이화학당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우애를 쌓고 근대적 교육을 받으며 꿈을 키워나갔다.



유관순열사는 4.1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한 죄목으로 서대문형무소 여옥사에 수감되어 수형생활을 하였는데 함께 수감되어 수형생활을 했던 어윤희의 회고에 의하면

'유관순은 그렇게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았으며 언제든 독립해야겠다는 정신으로 가득 했다'라는 글을 남겼다.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에는 독립장을 받은 유관순열사를 비롯하여 3.1운동에 참여한 애족장을 수항한 심영식, 독립장을 받은 어윤희, 대통령표장을 받은 김향화, 애족장을 받은 임명애, 애국장을 받은 권애라 등이 수감되어

3.1운동 1주년을 맞아 옥중 독립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192031일 여옥사 8호를 시작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된 3,000여명의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겨레의 불꽃 별이 되다 코너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의 모진 고문을 버티다가 1920928일 오전 820분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열사가 생을 마감하였고 1012일 이화학당에서 유관순열사의 시신을 인수하여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목사의 주재로 장례를 치르면서 민족의 영원한 누나가 되었다.


 

유관순열사유적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

041-521-2821

 


목록

만족도조사
만족도 조사

현재 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담당부서 :  
연락처 :  
최종수정일 :
2024-04-24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