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경 광덕산
소개
수려한 산세에 천안의 명산 광덕산은 연중 많은 등산객이 찾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가 아름다운 명산이다.광덕산은 높이가 699m로 천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광덕산에는 소담한 안양암과 한때 거찰이었던 광덕사 조선시대 여류시인 운초 김부용의 묘와 광덕사부도 장군바위 등 볼만한게 많다.
내용
광덕산을 찾아서
호두 시배지 광덕산
광덕산(699m)은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했다는 광덕사가 있다, 고려 충렬왕(1290) 때 유청신이 원나라에서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는 호두전래사적비가 절 어귀에 세워져있다. 광덕산은 광덕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광덕사를 지나 산을 오르게 된다. 정상은 33o㎡ 정도의 평지가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 거칠 것이 없어 정상의 풍광을 즐기기에 좋다.
계룡산 깔딱고개 대 광덕산 갈딱고개
광덕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수도권에서도 많이 찾는 산으로 산타는 맛이 제법인 산이다. 광덕사 앞을 흐르는 계곡을 따라 700계단을 오르고 정상을 향하는 코스는 깔딱고개의 참맛을 세 번 느끼며 오르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면 그 성취감 또한 진하게 느껴볼 수 있다.광덕사 입구 삼거리를 깃점으로 정상까지 약 2.5km인 이 구간은 1.2km가 급경사다. 광덕사 입구삼거리에서 700계단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1km. 이곳에서 정상까지 1.5km가 남았으니 대부분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룡산의 경우 은선폭포에서 관음봉으로 오르는 구간이 깔딱고개로 악명 높은데, 이 구간은 800m 남짓. 길이로 치자면 계룡산보다 광덕산 깔딱고개가 400m 더 길다. 경사 또한 만만치 않아 비교하면 오십보백보다.
세 번 쉬어가는 광덕산 깔딱고개. 그 뒤에 펼쳐진 정상의 풍광
그러나 광덕산 갈딱고개는 오르고 또 오르며 세 번 쉬어가는 맛이 있다. 700계단을 오르고 나면 팔각정과 함께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다음목표점인 헬기장까지 가는 길 처음은 그런대로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지지만 다시 급경사를 만나 힘겹게 올라야 헬기장에 도착할 수 있다. 헬기장에서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600m. 잠깐 안부를 지나는 구간을 빼고 나면 약 500m 가량의 급경사를 올라야 정상이다. 이 구간의 중간에 돌탑이 있는 쉼터가 있어서 마지막 세 번의 휴식을 취하면 정상으로 향하는 길가에 설치된 목책으로 연결 된 밧줄이 길의 험함을 예고한다.정상은 나뭇가지 하나 거스를 것 없이 전망이 좋다. 높지 않은 산임에도 고산 풍치를 맛볼 수 있다. 멀리 계룡산, 오서산이 조망되며 가까이로는 설화산, 봉수산, 도고산이 주변산과 어우러져 겹겹의 산세를 이루며 멀리로는 예당저수지가 가까이로는 송악저수지와 도고저수지 등이 조망 돼, 전망을 즐기는 눈 맛이 좋다.
광덕사에서 나이 많이 잡수신 나무를 보거든...
음식점이 모여있는 광덕사 삼거리에서 광덕산 가는 길. 길 오른 쪽으로 계곡이 흐르는 초입을 조금 벗어나면 광덕사 일주문이 다가온다. 일주문의 현판에 광덕산은 간데없고 ‘태화산광덕사’라 쓰인 현판이 무심히 걸려있을 뿐이다. 그 연유인 즉 사찰은 광덕산에 있으되 사찰의 주산은 그 아래 태화산에 있기 때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고목은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 호두나무 고목이 궁금하지만 한 번 살펴볼 일이다. 나무의 수령은 정확히 440년, 나무의 높이는 20m에 둘레 5.5m. 어른 세 아름 쯤 된다. 1982년 천안시에서 보호수로 지정, 관리하고 있는 이 나무의 관리자는 광덕사다. 호두나무는 광덕사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다. 광덕사를 가자면 거쳐야 하는 누 아래 통로 보화루를 거쳐야 한다. 아니, 누 아래 통로를 들어서려면 보화루 앞에서 버티고 서있는 호두나무 가지 아래를 지나야한다. 굵디굵은 가지를 계단 위로 살짝 치켜 든 호두나무는 문화재청에서 세운 안내판을 앞세우고 있다. 일주문 옆의 안내판 보다는 보기에도 훨씬 격이 높은 이 나무의 안내판에 의하면 높이 약 18.2m의 거목으로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유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두나무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고 하여 이곳을 호두나무 시배지라 부른다. 그 후 선생의 후손과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현재 광덕면 일대에는 약 25만 8천여그루의 호두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광덕사의 호두나무는 오랫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 온 나무로서,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고 한다.호두나무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또 다른 고목이 대웅전과 선방 사이로 보이는 산비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나무의 나이는 500년, 천안시에서 세워놓은 안내판을 앞세우고 있는데 호두나무보다 100살이나 더 먹었는데도 안내판은 격은 신통치 않다.일주문 느티나무는 440살, 경내의 느티나무는 500살. 가장 어린 400살 호두나무의 호사는 그 희귀성과 지역경제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니 용서해줄만 하지 않은가. 나이 잡수신 고목나무 세 그루를 만나고 나니 안도현의 시 ‘산이나 들판으로 소풍을 가면’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중략” /
지나가는 길에 /
오래 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를 만나거든 /
무조건 그 나무를 향해 경배할 일이다. /
“중략”
광덕사에 가거든 그 주변 살펴 볼 일이다. 수 백 년 묵은 고목을 보며 그 내력 쫒아보면 향토문화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나무들 그러하지만, 죽어서 절이 된 나무 또한 백년을 훌쩍 넘기며 사찰의 고색함을, 멋스러움을, 굳건함을 온몸으로 오늘에 전하고 있다. 그 나무의 숨결을 느껴보라! 광덕사에 가거든...
천년고찰 광덕사에 전해지는 문화유산
광덕사는 백제 때부터 유래되는 사찰로 신라의 자장율사가 수행을 마치고 귀국(643년)할 때 진신사리10과, 법의, 화엄경, 불치 등 많은 불구를 가지고 와 광덕사에 전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 후 신라의 흥덕왕 7년(823)에 진산화상이 중창불사를 했다고 한다.사적기에 의하면 개창 당시에 금당 9, 종루 8, 범각 2, 법전 3층, 동남방에 천불전, 그 곁에 만장각 80여간, 북에는 환희암, 동에는 문수암, 수월암, 서쪽의 문수대아래 한산사, 또 대상에는 보현암, 영선암, 금선암, 사자암, 하선암, 선정암, 봉두암, 영수암 등 89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충청?경기 일대에서 가장 큰 사찰이며 총 본사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고려 충령왕 5년(1334)에 삼중창을 했다고 전한다.광덕사에 전해지는 문화재는 신라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초기에 조성된 탑인 광덕사3층석탑(도지정 유형 제120호)가 있고, 대웅전을 올라 가는 계단의 양측에 세워져 있는 광덕사석사자(문화재자료 제252호)가 있는데 이들 석사자는 얼굴이 거의 하늘을 보는 수평으로 되어 사람의 얼굴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전체적으로 도식적인 표현을 하여 사실감은 없지만 친근감이 드는 유물이다.중요 유물로는 광덕사 고려사경(보물 제390호), 광덕사소장 면역사패교지(보물 제1246호), 광덕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제1261호) 등이 있으며 기타유물로는 광덕사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재 제85호), 광덕사 대웅전(문화재자료 제246호), 광덕사 천불전(문화재자료 제247호), 광덕사 부도 (문화재자료 제253호) 등이 있다.
이용안내
광덕산과 광덕사는 입장료가 없다. 산의 탐방시간은 특별한 제한이 없고 광덕사 또한 산과 마찬가지다. 찾아가는 길은 대전-당진 고속도로 신양IC에서 온양온천역 방면으로 길을 잡아 장촌교차로에 이르면 우회전 후 직진. 좌부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623번 지방도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보산원삼거리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우회전하면 3.2km 전방에 광덕산휴게소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마을로 진입하면 광덕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