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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애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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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인아
구분
제목 조국 광복에 평생을 바친 참된 지식인 석오 이동녕

천안 목천읍 동리에서 태어난 석오 이동녕은 국권을 상실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 조국 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지식인입니다. 이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과 나고 자란 생가가 목천 동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목천읍 행정복지센터에서 내려 서리 2길을 따라가다 보면 목천 초등학교가 나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산방천을 건너면 동리입니다. 




산방천 위에 놓인 동리교를 건너 동리 경로당을 지나다 보면 '희망이 자라는 마을 동리'라고 쓰인 담벼락에 유관순 열사와 이동녕 선생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만 보더라도 애국지사의 마을답다는 게 느껴집니다.        





동리 경로당 끝에 사거리에서 동리 2길 중 왼쪽으로 올라가면 이동녕 선생 기념관과 생가가 나옵니다. 약 4분 정도 걸어가면 이동녕 선생 생가지 주차장이 나옵니다. 주차장에는 석오 이동녕 선생이 직접 붓으로 쓴 글씨 '산류천석'(山溜穿石)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습니다. '산에서 흐르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을 수 있다'라는 뜻으로 석오 이동녕 선생이 평소 자주 썼던 글씨입니다. 



그리고 앞에 망원경이 설치되어있는데, 이동녕 생가 뒷산에 왜가리가 많이 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 카메라에는 잘 담기지 않는 높이라 찍을 수는 없었지만 망원경으로 보니 많은 왜가리가 관찰되고 있습니다.



생가로 가는 길목에 불두화가 만개해 있습니다. 5~6월이면 한창 피는 꽃인데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거려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주로 절에서 정원수로 많이 심어놓던데 수국이랑 비슷해서 가끔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생가 앞에 석오 이동녕 선생 동상이 앉아있는데, 선생 역시 코로나 19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계십니다. 누가 센스 넘치게 마스크를 씌워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야외에 와서도 생활 방역 수칙을 지키라는 뜻 같았습니다.



이동녕 생가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72호로 9칸 반 규모의 ㄱ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많이 변형이 되었지만 생가지에는 이동녕 선생의 유년시절 모습을 재현해 놓아 아이들과 돌아보면 유익할 듯합니다. 



생가지 주차장에 기념관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열을 체크하고 입장을 해야 합니다. 손을 소독하고 다른 사람과 2m 이상 거리를 두고 관람을 해야 합니다. 




기념관 입구 커다란 태극기 앞에 이동녕 선생 흉상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남들과 더불어 일을 할때 친절하고 자상했다던 이동녕 선생을 잘 담아낸 듯 보입니다. 자신의 영예를 드러내기보다는 임시정부의 미래를 위해 남을 도와 일을 성사시키길 좋아했다고 합니다.




기념관 내부에는 초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이동녕 선생의 모습과 자주 쓰시던 글씨 등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이동녕 선생은 1896년 독립협회에 참가해 개화민권운동을 하다 투옥되기도 하고, 묵암 이종일이 운영하던 제국신문에 사설을 집필하면서 민족사상을 정립하였습니다. 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농성을 벌여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매국노를 응징하려는 계획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해외에서 독립운동기지를 수립하는데 헌신을 하셨고,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대성학교와 오산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또, 초대 소장을 맡았던 신흥강습소를 창건해 교장으로 취임해 수많은 독립군을 배출해 내기도 했습니다.



임시정부의 중추 역할을 하던 이동녕 선생은 일흔이 넘어서까지 광복군 창설을 위해 노력하다가 지병으로 앓고 있던 천식이 악화되어 조국 광복을 바로 코앞에 두고 이국 땅에서 순국을 하였습니다.



늘 상대방을 포용하는 인품을 가졌지만 강직한 선비의 성품으로 뜻을 굽히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동녕 선생은 끝까지 동지들에게 당부했던 말은 '대동단결'(大同團結)이었습니다. '오로지 뭉치면 살고 길이 열릴 것이요, 흩어지면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셨습니다. 



누구보다 대한민국 독립을 염원하며 임시정부의 최고 지도자로 공을 세웠지만 어떠한 명예나 지위를 탐내지 않은 그의 성품을 되새기고,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돌아보며 이동녕 기념관을 나섰습니다. 천안에는 독립기념관 인근에 유관순열사기념관과 이동녕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천안 역사문화 둘레길을 따라 나라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아끼지 않은 분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이동녕선생생가지&이동녕기념관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6 

문의 041-521-3355

관람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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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4-04-24 09:23